※ 스포일러 포함입니다. ※
풍자의 달인 아담 맥케이가 돌아왔다. 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를 집중 거론하며 미국 금융시장의 실체를 낱낱이 밝혔다. 또한 미국 부통령이었던 체니의 전기를 거론하며 권력의 내부를 파헤치기도 했다(<바이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분명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전개를 풀어가는 방식이 관객들을 이해시키는데 효과적이었다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용어가 나오면 유명 부자들이 제4의 벽을 허물며 쉽게 설명하고 재치 있는 대사와 정교한 편집으로 관객들이 몰입하도록 했다. 이처럼 아담 맥케이는 뛰어난 연출로 극을 장악해 관객의 집중을 잃지 않도록 하는 강점을 지닌 감독이다.
돈 룩업을 기대한 것은 이런 아담 맥케이의 스타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전작에 이어 명배우들을 총출동시킨 그가 어떤 풍자를 할지 궁금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담당 교수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태양계 내 궤도를 돌고 있는 혜성이 지구와 직접 충돌하는 궤도에 들어섰다는 엄청난 사실을 발견한다. 지구를 멸망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언론투어에 나선 두 사람은 혜성 충돌에 무관심한 대통령 오리안(메릴 스트립)과 그녀의 아들이자 비서실장 제이슨(조나 힐)의 집무실을 시작으로 브리(케이트 브랜쳇)와 잭(타일러 페리)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 ‘더 데일리 립’ 출연까지 이어지지만 성과가 없다며 초조해한다.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담 맥케이 같지는 않지만 확실히 아담 맥케이 작품이다 돈 룩업은 전작과 큰 차이를 보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빅 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루었고, <바이스>는 미국의 전 부통령 체니를 다루었다. 두 영화는 과거 사건을 애덤 매케이의 시선으로 다시 쓴 것이다. 하지만 금 룩업은 아니다. <돈룩업>은 포스터 문구에도 적혀 있듯이 ‘실화가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그린다. 현실을 다루거나 혹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다룬 것이다. 그래서 <돈 룩업>은 과거 대형 사건을 다룬 전작들과는 다르다.
이러한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돈 룩업>은 아담 맥케이의 전작과 같은 궤를 같이한다. 어떤 부분이 그랬을까? 일단 배우들의 앙상블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할리우드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이들은 한데 모여 수많은 대사를 쏟아내며 대립한다. 백악관 대화면은 여러 캐릭터가 얽혀 있어 컷이 빠르게 전환되는데도 난잡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물 흐르듯 산뜻했다. 이미 증명된 배우들의 연기력과 상황에 어울리는 연기를 지도한 애덤 매케이의 연출, 관객들이 피곤하지 않도록 정교하게 작업한 편집 덕분이다. 이는 아담 맥케이의 전작에서도 볼 수 있었던 강점으로 무거운 주제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간단히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풍자다. 애덤 매케이는 이번에도 풍자의 대상을 정확히 설정했다. 먼저 민디와 케이트가 백악관으로 떠나는 장면을 보자. 거대 혜성을 발견한 민디는 테디(롭 모건)와 연락이 닿아 백악관에서 직접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하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당황한 민디는 케이트와 함께 공항으로 급히 향했지만 비행기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수송기에 오른다. 수송기에는 사람도 탑승하지만 보통은 물건을 싣는다. 즉 민디와 케이트는 물건일 뿐 이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은유한다. 과학자들의 고난은 이 장면에서 암시됐다.
과학자들의 고난은 미국 정치와 언론, 대중을 향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대통령과 비서실장은 과학자들의 경고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정치적 현안이나 예산 문제를 거론하며 무시하기에 바쁘다. 다른 정치인들도 거대 혜성의 위험성을 제기한 과학자들에게 좌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을 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가오는 재앙보다 톱스타의 열애를 집중적으로 보도할 뿐이다. 과학자들의 경고는 유희거리로 만들기도 하고 일부 발언을 왜곡하기도 한다. 이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대중도 애덤 매케이의 비판에서 불가피했다. 톱스타의 열애 보도에만 집중하거나 분노를 참지 못하고 튀어나온 케이트를 밈으로 소비하며 사이버 파일링을 일삼는다. 혹은 민디의 잘생긴 외모만을 기린다. 이는 <바이스>의 쿠키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들이 <와일드 스피드> 시리즈가 몇 편까지 나왔는지 똑같은 시시한 이야기만 하는 장면이었지만 <돈 룩업> 상황과 같다.
아담 맥케이는 이런 풍자를 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돈룩업>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정확한 데이터를 제시하는 과학자를 믿지 않고 궤변으로 공격하는 행동은 지구온난화를 믿지 않는 트럼프 혹은 극단주의 정치인들과 비슷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톱스타 스캔들에 열중하는 등 자극적인 보도에만 관심이 있는 언론도 현실과 같다. 대중도 마찬가지. 이념에 사로잡혀 과학자들의 말을 곡해하거나 반지성주의로 뭉쳐 과학자들을 무조건 반대하는 모습은 한국 세계와 얼마나 다른가.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급진적인 결말을 이해할 수 있다. 거대 혜성은 마침내 지구와 충돌하고 거의 모든 지구의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한다. 애덤 매케이는 희망을 말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막을 수 있었던 재앙, 거대 혜성은 무능한 정치인과 무지한 대중들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우리 세계 현실이 지속되면 영화의 결말처럼 될 것이라고 아담 맥케이는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돈 룩업’은 명배우들의 열연과 아담 맥케이 특유의 재치 있는 연출이 돋보인 영화였다. 그리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본 전작과 달리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정조준한 아담 맥케이의 날카로운 시선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그저 까불고 웃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속 세계가 언제 우리가 사는 세계로 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영화를 관람하는 내내 감돈다. 이는 미국만의 상황은 아닐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다를 바 없고 전 세계가 같을 것이다. 여전히 낙관적인 태도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혹은 자신이 살아있는 세계의 재앙을 애써 부정하려는 이들에게 아담 맥케이는 말한다. 당장 우리 눈앞에 닥친 현실을 똑바로 쳐다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