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일행을 태운 승합차는 헝가리 국도변의 한 마을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흰색으로 벽이 칠해진 작은 성당에 도착한 시각은 대략 정오를 조금 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착한 성당은 국도의 좁은 길과 주변의 작은 집들과 어우러져 잔잔한 종교적 아우라의 고고함을 간직하고 있으며 작고 오래된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성당 일각의 내리막길에는 층계단식으로 신도들의 무덤이 경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크기의 무덤 앞에는 각자의 사연을 담은 십자가가 언덕비, 바람을 견디며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죽은 이의 벗이 되고 있다.무덤이 죽은 자의 존재라면 고개를 숙인 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은 삶이 아직 남아 있는 살아있는 존재다. 내 카메라의 시선은 두 사람의 존재에 그치고 두 존재가 주고받는 메시지에 주목한다. 삶 너머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곳으로 떠난 사람과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무덤 앞의 중년 신사 사이에 어떤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을까! 앞에 있는 무덤 주인공과는 어떤 인연이 있고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상처와 용서라는 단어가 시공간을 넘어 나에게 메시지로 다가온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군가에 의해 상처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럴까 했던 사연과 내용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나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포장된 이기적인 욕심이 상대방에게는 깊은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 내 시선에는 무덤 앞에서 저런 자세로 움직이지도 않는 중년 신사는 지금 앞에 죽은 존재에게 용서를 구하는 듯했다. 용서를 요하는 배경에는 상대방에게 ‘나쁜’ 행위를 한 이유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용서는 과거 시간대인 존재에게 벌어진 일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를 용서를 빌면서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 달라는 것일까!현재의 시공간에 없는 중년 신사 앞의 존재는 이렇게 답하는 듯하다. 당신의 존재는 나에게 준 상처보다 큽니다. 지금의 나를 당신 탓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은 이미 허락을 받았으니 앞으로는 힘들지 않기를 바래요!두 존재가 나누는 메시지를 경건한 마음으로 사진 속에 담는다.잠시 그 자리에 서서 성당 아래 작은 마을을 내려다본다. 동네 골목 모퉁이에 아줌마 몇 명이 무슨 말인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트럭에서는 무언가를 내리고 있다. 어디론가 바쁘게 가는 사람도 보인다. 텃밭처럼 보이는 마을 중간쯤에 있는 밭에서는 허리를 숙여 일하는 사람도 있고, 한쪽 골목 중간에는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힘차게 언덕을 오르고 있다. 관광객의 시전으로 보는 마을 풍경은 그저 평안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일상으로 보인다.
내가 촬영한 사진에 찍힌 두 존재도 저기 보이는 그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이제는 똑같이 죽은 두 존재를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