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마지막 인터뷰 http://www.youtube.com/watch?v=2vC7jB3SeeM 날이 갈수록 – 김정호 jasmina 2006/03/112 3:01 jasmina2 | jasmina_2 http://blog.naver.com/jasmina_2/120022750539


★아쉽게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스타 중에는 여전히 안타깝고 그리운 사람이 있다.제임스 딘, 리버피닉스, 존 레논, 알리야, 레슬리 장국영… 그리고 정해린, 김현식, 김광석, 유재하, 이은주 그리고 지금은 거의 잊혀진 김정호 씨…전날 밤씨가 좋아하는 김정호씨의 노래 중 ★날이 흐를수록’라는 노래가 마음에 와닿는다.가을잎 찬바람에 휘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에는 다시 황금물결을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둘룰루, 꽃이 지넬룰루, 가을이 지나, 하늘에는 조각구름, 무정한 세월이여 꽃잎이 떨어진다, 젊음도 곧 계속될 것이다, 머물 수 없는 시대, 우리 시대, 룰루루루루 세월이, 금세카데가 지나간다, 젊음도~ 이름도 모르는 소녀 – 김정호 jasmina2|blog.naver.com/jasmina_2/120022683018|바이올린연주youtu.be/CzRjXALqm1g동영상조아람전자바이올린연주이름모르는소녀부산항으로아름다운오카야마여고시절심해요허망한마음창밖의여자흰나비2926분통합가사Version조아람전자바이올린연주8곡연속연주감상_이름모르는소녀돌아와부산항으로아름다운오카야마여고시절심해요허망한마음창밖의여자흰나비29분26초통합가사Versionyoutube버들잎따고쓸히바라보는이름없는산새들돌아서 안개 속으로 떠나는 이름 모를 소녀

<@NHN@LINEBREAKER@N HN@>전야님 선물 이에요.김정호 씨 노래는 더 올라가세요~^^가수 김정호 1952년 3월 27일 출생 1985년 11월 29일 폐 결핵으로 34세의 나이에 요절 잘 보기 전곡을 들을 수 있습니다.자동적으로 플레이되지만 나오지 않으면 ▶| 버튼을 누르세요세 1)이름도 모르는 소녀 2) 흰 나비 3)날이 갈수록 4. 그 별과 달을 5) 보고 싶은 마음 6)나그네 7)세뵤크길 8)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픈 9)그 사람은 무정한 사람 10)달맞이 꽃 11)사의 찬미의 12)월 13)씨 14)한 세상에 태어났고 15)그것은 바람 16) 푸른 하늘 아래서 17)꽃잎 18) 하얀 천사의 노래 19) 기다리는 20)이별 jasmina비 속을 둘이서-김정 호너의 마음 깊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살짝 얘기해서 정말 말을 못하면 마음 깊이 새긴다면, 오가는 시선으로 나에게 전하고 주렴 이빗속을 걸어가나요 둘이서 말 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저곳 담 끝까지다 정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이 비 속을 걸어 가나요 둘이서 말 없이 갈까요 아무도 없는 이곳에서 저곳 담 끝까지다 정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라라 라라 라라 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갈수록…날이 갈수록 어느새 달력이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 아무도 만류가 없지만 그렇다고 이처럼 무심히 들어 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 없다고 매정하게 흘러가는 세월…거리에서 사방으로 요령을 못 잡고 흩날리는 낙엽을 보면서 문득 한해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다가왔다.대학 시절의 기말 고사를 치른 이맘 때 누렇게 변한 잔디를 보면서 멜로디에 취해서 눈물로 부른 ‘김정호’의 ‘갈수록’이라는 노래가 오늘따라 특히 가슴을 헤집고 있다.1985년인가’김정호’라는 가수가 세상을 떠나고 요절했다. 한국 대중 가요에서 이같이 가슴을 찢기는 듯한 음악이 있었나요라고 생각한다. 이 노래를 부르면 너무 우울하게 된다. 노래의 말미에 “젊음도 갈게”라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절로 나……. 날이 갈스록 작사/작곡 킴상베 노래, 김정호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서 날리면 캠퍼스 잔디 위에는 다시 황금 물결 잊을 수 없는 얼굴 얼굴 얼굴 표정 루루 루루 꽃이 지는은 가을이 가는 하늘에는 구름 무심한 세우오루이 여의 꽃잎이 떨어지므로 젊음도 곧 갈 것 머무를 수 없는 시대 우리 시대, 루루 루루 세월이 가네 루루 루루 젊음도 갈게
천재의 대중 음악가’김정호’ 춤추는 삶:1952년 3월 27일 회사망:1985년 11월 29일학의 힘:미후와크잉직앗프:국내 가수 데뷔 1973년<이름 모를 소녀>대표 곡:<새><사랑의 진실>< 하얀 나비>< 잊는다.><사랑의 진실><죠뵤루과 달은><씨>그의 이야기 ☞ 뛰어난 음악적 재능은 판소리가였던 외가에서 이어받아 52년 3월, 본명이 쵸용호의 김정호는 전남 광주에서 아버지’조 영’와 어머니’팍슥쟈’의 2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여수 경찰서장을 맡아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고 어머니는<동일 창극>의 단원으로 명창·소희와 함께 활동했던 창의 명수로 유명했던 음악적 재능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엄마와 함께 한국 전쟁 중 납북자 생사를 모르는 외 할아버지”박·돈 죄”는 한국 국악의 거인들이었다. 인간 문화재”김·동준”국립 창극단장”박·우성”등이 제자인,”보국 노래”,”유관순 전기”,”해방의 노래”등 판소리 창작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그리고 국립국악원 수석단원으로 아쟁을 연주하고 서울예전과 전남대 등에서 국악 후진 양성에 몰두한 ‘박종선’이 외삼촌이다. 외삼촌의 아쟁은 그의 음악적 관심의 근저이자 시작이었던 그는 음악적 욕구가 꿈틀거리자 학업마저 포기하고 기타를 배우는데 빠졌다. 이때 찾아간 사람이 <삼청동 기타박사>로 불렸던 ‘이생회’ 선생님이었다. 집을 뛰쳐나와 우이동 쪽방을 얻어 하루종일 기타와 씨름을 했다.당시에는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지미 핸드릭스> <산타> <비틀스> 등 비트가 강한 록 사운드에 대한 관심으로 가득했다.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이내 만만치 않은 기타 주법을 익혔고 외국 록그룹 레퍼토리를 꽤 맛있게 연주할 정도로 진전이 빨랐다.음악적 야망과 화려한 데뷔 ‘우리 음악으로 세상 1위 한번 해보자 70년대 초 북한산에서 임창재 등과 미8군에 출연한 ‘이상일’을 음악 스승으로 맞아 연주에 전력을 기울였다. ‘임창재’는 이 당시 김정호가 믿고 의지하던 친한 음악의 형제였다. 이들은 음악과 결혼했다고 할 정도로 음악적 야망을 함께 키워나갔다.임창재는 우리가 다 잤다.새벽에 일어나 보면 정호는 항상 기타를 껴안고 있었다. 그는 남들에게 조금이라도 기타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밤을 새워서라도 극복해버리는 완벽주의 스타일이었다. 당시 북한산 능선에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공부도 잘 못하고 무지한 우리가 음악으로 세상에서 1등을 하자”고 새끼 손가락 걸고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스킬 보이스〉라는 록 그룹을 결성해 미 8군 무대에 진출한 ‘임창재’가 ‘이수영’과 함께 듀엣 〈어니언〉으로 데뷔하려 하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한 김정호는 작곡한 노래를 선물했다. <오니언즈> 데뷔 앨범 속에 수록된 김정호의 곡은 두 사람의 합의 아래 임창재의 이름으로 먼저 발표했다.히트를 치게 되면 그제서야 “이 곡들은 김정호가 만든 곡”이라고 깜짝 발표하며 “김정호에 대한 호기심이 높아질 때 데뷔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의리 있는 임창재는 대표곡 <작은 새> 외에도 <사랑의 진실> <외톨이> <이별과 달을> 등 모든 곡이 대박을 터뜨리겠다고 약속대로 KBS 라디오 방송에서 사실을 발표한 ‘김정호는 누구냐’는 대중의 궁금증이 더해질 때, 임창재의 손에 이끌려 73년 <이름을 모르는 소녀>라는 데뷔곡으로 그는 대중 앞에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70년대를 풍미하며 엄청난 음악적 영향력을 끼친 천재 대중음악가의 등장이었다.<어니언>의 히트곡 <사랑의 진실> <작은새>의 진짜 주인공이 밝혀지자 미 8군 무대에서 기타를 치며 <4월과 5월> 멤버로 잠시 활동하던 김정호는 TBC 방송 <신광철> PD에 의해 <패티김의 스페셜 프로>에 게스트로 출연하게 됐다.이미 <전국 그룹 사운드 콘테스트>에서 가수왕에 등극하며 솔로 데뷔를 꿈꾸던 ‘조용필’과 함께 ‘김정호’의 동반 게스트 초청은 파격적이었다. 폭발적인 반응 속에 두 사람은 대중 속에 탄탄한 첫발을 내디뎠다.
<이름을 모르는 소녀>는 오랫동안 애태웠던 짝사랑의 흔적, 우이동 시절부터 김정호의 음악성을 인정해온 기독교방송 ‘김진성’ PD는 데뷔곡 <이름을 모르는 소녀>를 듣고 “한국의 모차르트 탄생”이라고 극찬했다. <이름을 모르는 소녀>는 아내 ‘이연희’를 애틋하게 짝사랑하며 품은 회한을 담은 노래였다.교동초등학교 선배의 사촌동생이었던 부인은 김정호가 중학교 시절부터 오랜 세월을 홀로 태운 평생 반려자였다. 자신의 일상적인 음악생활을 이야기하는 연애편지를 하루에 몇 번 보내고 용기를 내어 집으로 돌아갔다.보수적인 그녀의 어머니는 직업도 불안정해 음악을 한다는 김정호를 믿지 못했다. 그러나 순수한 심성의 사촌동생이 싫지 않았던 이영희는 74년 늦봄 <쉘불>에서 노래하고 있는 김정호 앞에 갑자기 나타났다.그리고 이들은 3년간의 열애를 하다 77년 반포 17평 주공아파트에 둥지를 틀고 쌍둥이 딸 ‘정숙’과 ‘정은’을 얻었다. 12번이나 이사를 거듭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작은 가슴으로 큰 발자국을 남긴 거인, 거듭된 고난과 시련도 음악혼을 잠재우지 못했고 1975년 인기 1위였던 그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마 파동에 휘말려 음악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대마는 자신의 노래 작은 새처럼 좌절과 방황의 견디기 힘든 고행의 길을 걷게 했다.매니저 ‘이상기’와 형처럼 김정호를 돌보던 ‘최무송’은 경제적 이중고까지 겪는 그를 위해 76.10월 무교동에 있는 <꽃잎>이라는 생음악 레스토랑을 맡겼다. 1983년 재개발로 헐리기 전까지 꽃잎은 유일한 그의 가무대였다.하지만 그는 좌절 속에서도 작곡에 전념했고 인생의 전부인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 달 중 20여일은 한적한 남이섬이나 우이동 <월벽산장>에 칩거하며 사라지는 음악혼에 불을 붙였다.1977년 방위소집으로 군 복무를 마칠 무렵 함께 활동이 금지된 ‘하남석’과 국악 리듬에 <어쿠스틱 기타>와 <신시사이저>를 접목하는 새로운 음악을 구상하기도 했다.80년 3월 5년 만에 대마 망령에서 벗어난 김정호는 재기앨범 인생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금의 달콤함도 잠시 인천 바닷가에 위치한 결핵요양소에 입원해야 했다. 오랜 정신적 고통과의 싸움에 지쳐 만신창이가 된 심신 때문이었다.과거 화려했을 때는 관심이 없다. 인기보다는 마음에 있는 좋은 노래를 불러 남기고 싶다던 김정호는 일년 이상의 치료를 해야 했지만 결핵균보다 더 강하게 꿈틀대는 음악적 열정 때문에 4개월 만에 요양원을 뛰쳐나가야 했다.82년 다큐멘터리 음악에 빠져 있던 <투아애무아> 출신의 ‘이필원’과 친해지면서 신디사이저로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음악에 빠졌다. 새로운 음악적 열정이 꿈틀거리자 김정호는 단식 기도와 산상 기도에 매달리며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83년 11월 이필원이 직접 디자인한 <당신>은 김정호의 국악적 감성이 배어 있는 눈물겨운 앨범이다. 외삼촌의 국악에 자신의 음악을 접목시키고자 아쟁, 가야금, 징을 직접 치며 사라지는 생명의 불길에 영혼을 담으려 했다.원망스러운 한숨 이미지를 담은 노래가 ‘님’이다. 이미 그의 죽음을 예견한 듯 상여를 연상케 하는 선율이었다. 머리가 번쩍 뜨이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당신>은 바로 온몸을 불태운 김정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또한 수록곡 ‘외로운 여자의 미소는 슬프다’는 요양원 시절 송도 해변을 걷는 여성에게서 느꼈던 슬픔의 이미지를 이끌어낸 히트곡이다. 이 앨범은 숨쉬기조차 어려워 5개월의 최장 시간 녹음을 해야 했던 그의 유작 음반이다.85년 11월 29일 33세의 천재 음악가 김정호는 50여 곡의 주옥같은 곡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너무나 사랑했던 아내에게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유언만 남기고 하얀 눈이 내리던 날 경기도 고양시 <기독교공원묘지>에 안장됐다.고 김정호는 행복한 가수지만 사상 추모공연을 세 차례 헌사받은 가수는 그뿐이다. 첫 추모공연은 86년 5월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렸다. 1주기에 맞춰 송창식, 김현식, 윤신혜, 하남석, 이정선 등 18명의 동료 및 선후배가 참여해 추모 앨범이 세상에 태어났다. 이 앨범은 가요 사상 첫 헌정 음반으로 KBS로부터 음반기획상을 받았다.17년 뒤인 2003년 11월 반가운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억수같이 비가 내리던 날 명동 서울YWCA에서 두 번째 추모 공연이 열렸다. 두 번째 헌정 앨범도 탄생했다. 두 장의 헌정 음반도 전혀 없다.그리고 2006년 11월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그의 세 번째 추모 공연이 열렸다. 백승진, 최백호, 홍민, 장은아, 김세화, 최은옥, 김소연, 김광석, 김은영, 그리고 라일밴드가 그의 노래 메신저가 됐다.대중가수의 죽음은 대중의 기억에서 삭제되는 것을 의미한다. 유행에 민감한 대중문화는 현재 혹은 미래지향적 성격이 강하다. 수많은 가수가 세상을 떠났지만 추모 공연이 열린 가수는 김정호를 비롯해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김정호, 그는 비록 갔지만 그래서 행복한 가수다.그가 남긴 노래 ☞이름 모를 소녀 ■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프다 ■(주석:고독한 여자의 미소는 슬프다 결핵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면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내의 뒷모습을 보고 만든 노래입니다.by 통통아저씨) 그날 ■꽃잎 ■꿈속의 사랑 ■나그네 ■나그네 ■눈동자 ■님 ■달맞이꽃 ■무정한 사람 ■이별 ■봄여름가을겨울 ■빗속을 둘이서 ■사랑의 진실 ■죽음의 찬미 ■외톨이 ■잊자 ■저 별과 달을 ■흰나비 ■작은새 ■행복한 나라로■ [출처]천재 대중음악가 정영호(김상영섬) / 영화배우 정섬성

가을느낌 그날 밤속을 둘이서 외로운 여자의 미소는 슬프다 외로운 목소리 김정호 노래듣는 이름 모를 소녀 http://www.youtube.com/watch?v=oGRZB2bxu4I 가집 전곡 가사 첨부 조회수 275,293회 2020.3.8.https://www.youtube.com/watch?v=1aiTDHdjbLw 하얀나비(Live) 조회수 5,921,488회 2010.7.15 http://www.youtube.com/watch?v=mLc5FHrVTP0
님.wmv 조회수 1,438,638회 2011.9.21.https://www.youtube.com/watch?v=ShasjTy39h8
주주열 이름 모를 소녀 빗속을 둘이서 저 별과 달을 김정호, 김정호의 조회수 4,020,714회 2012.11.18.https://www.youtube.com/watch? v=ujT_P-kqKB0
하얀 나비 / 빗속을 둘이서 / 당신의 조회수 377,921회 2020.12.22.https://www.youtube.com/watch?v=-ZJLmQcRDLs
★ 김정호 1952년 3월 27일 ~ 1985년 11월 29일 (33세에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28-21 서울대병원) 가수, 송라이터로 솔로가수로 데뷔하기 전 4월과 5월 3기 멤버로 활약하였으며 어니언의 많은 노래를 작곡, 작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였다.스타덤에 오른 것은 1973년 솔로로 데뷔해 ‘이름 모를 소녀’가 히트하면서부터다.1985년 11월 29일 폐결핵으로 겨우 3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학력 광주수창초등학교(전학) → 서울 교동초등학교(졸업) 대동중학교 성동고등학교 대표곡 <이름 모를 소녀> <흰나비> <나그네> <인생> <나날> <외로운 여자의 미소는 슬프다> <사마> 기타 작곡, 작사한 노래 [편집]〈작은 새〉〈사랑의 진실〉〈잊어라〉〈이별과 달〉〈한줄기〉〈빗속을 둘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