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의 큰 요인 중 하나인 상업의 비약적인 발전, 즉 세계시장 개척은 지리상의 새로운 발견을 가져왔다. 바다와 하늘만 보이는 대양 한복판에서도 항상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야 하는 원앙 항해는 천문학의 발전을 자극했다. 그 결과 아라비아에서 전해진 남침반의 개선과 삼각법 연구 등 천문학상의 문제해결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천문학의 혈명시대가 도래했다. 예를 들어 지금 배가 태평양 한복판에 있다면 경도를 알 수 있어야 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경도와 위도를 알기 위해서는 별의 위치를 관측할 수 있는 정확한 시계, 항해력(천체의 운동을 나타내는 표), 육분의(별의 고도를 측량하는 기계)가 필요하다. 그 당시 방식에는 오차는 있었지만 베르데곶 우회, 희망봉 발견, 아메리카 대륙 발견, 인도항로 발견 등이 잇따랐다.삼각법은 중세 동안 천문학의 한 분과였다. 항해술 개척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 증명 등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으로 그 양상을 바꾸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 ‘천체의 회전에 대하여’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등장한 그때까지 유럽이 신봉한 천문이론은 알렉산드리아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이었다. 이 천문학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지구 중심설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새로 나타난 코페르니쿠스 천문학은 지구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지 않았고 대신 태양을 우주의 중심으로 삼았다. 이는 전통적인 우주질서를 뒤엎는 결과를 가져왔고 과학 철학 양면에 엄청난 문제를 야기했다.그렇다고 기존의 프톨레마이오스 천문학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태양의 입장에서 보는 태양 중심설에 비해 일반성이 적을 뿐 지구 입장에서도 별의 운동을 예측하고 추산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 중심설에 대해 코페르니쿠스는 전체적으로 통일된 우주론으로 자신의 이론을 일관시켰다. 이 코페르니쿠스설은 비단 천문학상의 한 학설에 그치지 않고 당시 유럽의 전통적 세계관에 대해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으로 정치 종교 분야뿐만 아니라 널리 사상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은 코페르니쿠스설의 문화사적 사상사적 과학사적 의의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다만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은 지구 중심설을 태양 중심설로 바꿔 설명했을 뿐 기존의 결함을 그대로 답습했다. 그 가장 큰 결점은 모든 행성의 궤도를 원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이 가설은 정밀한 관측 결과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천문관측을 통해 밝혀졌고 이것이 마침내 케플러가 행성운동의 3법칙을 발견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케플러
케플러는 천문학자로서 탁월했던 타코브라헤의 조사를 사용하여 연구하였다. 케플러는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관 신봉자로서, 케플러가 수정한 새로운 천문학 체계는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 체계를 이론과 응용의 두 변에서 능가하여 태양중심설의 정당성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케플러는 타코브라헤의 정밀한 관측치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상 값이 일치하지 않는 사실 때문에 고민한 끝에 타원궤도론을 착상한다.
- 타원궤도의 법칙 : 모든 행성은 태양을 초점으로 하는 타원궤도를 그리며 공전한다. 타원은 중력이 거리의 역승에 비례한다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영향을 미쳤다.(2) 면적의 법칙 : 하나의 행성과 태양을 연결하는 선은 같은 시간에 같은 면적을 덮쳐 통과하기 때문에 태양에 가까울수록 느리고 떨어질수록 느리게 움직인다.(이는 운동량 보존의 법칙의 영향을 받고 있다.)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태양과 행성 거리의 세제곱에 비례한다.
이 타원궤도의 계산으로부터 미적분의 발상이 일어나고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은 카발리에리 이후 뉴턴이 중력을 발견하고 유율법에 의해 천체의 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천체운동에서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타원형의 궤적을 발견했다. 어떤 물체는 쌍곡선 또는 포물선의 궤적을 그릴 수 있는데 모든 궤적은 원추곡선이라는 발견이다.
만유인력은 먼 거리에서 어떻게 작용할까 하는 생각을 가졌고 아인슈타인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빛의 속도로 전파되는 중력파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그리고 현재 두 개의 블랙홀이 융합하는 과정에서 중력장을 발견했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로그의 발견
망원경의 발명으로 천문학, 항해술, 삼각법은 급속히 발달했지만 동시에 방대하고 복잡한 천문학 계산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계산기술이 필요해졌다. 이게 바로 로그였다. 계산법의 발전이 ‘천문학자의 수고를 덜어줌으로써 그들의 수명을 두 배로 늘렸다’는 라플라스의 말은 과장이지만 실감이 난다. 실로 인도-아랍식 기수법과 대수, 그리고 소수가 근대 계산의 기적적인 힘을 만들어낸 3대 발명이며, 17세기 과학영웅시대를 떠받친 주춧돌 역할을 했다.로그의 개념은 미하엘 슈티펠의 책 산술백과에서 처음 소개된다. 이 책에서 그는 x와의 2^x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각각 대응하는 수의 상열의 덧셈은 하열의 곱셈에 대응한다.
이것이 바로 현재의 로그 개념이다. 이 로그 개념을 사용하여, 크고 복잡한 곱셈 문제를 간단한 덧셈 문제로 바꿀 수 있다. 로그 이론은 스코틀랜드의 수학자 네이피어가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놀라운 로그 법칙의 기술’에서 처음으로 이 계산법을 설명했는데, 그가 죽은 후에 나온 ‘놀라운 로그 법칙의 집대성’에는 로그 표의 계산법이 실려 있다.로그와 진수라는 단어는 네이피아가 만들어낸 용어다. 하지만 실제 계산에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로그표는 네이피어의 친구 브리그스가 만든 것이다. 이때 처음으로 10을 밑도는 상용 로그가 만들어졌다. 미적분학에서 배우는 자연로그, 즉 네이피어의 수 e를 사용하는 로그표는 이보다 앞선 1619년 존 스페델이 공표했다.중세 말기에 채택되기 시작한 아라비아식 기수법과 뒤이은 소수 표시법, 그리고 대수 계산 등은 유럽의 수학을 고대의 전통적인 계산법에서 완전히 탈피시켰고 그 결과 수학은 근세사회에 적합한 체계를 갖추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