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별』을 읽고 잡다한 사고방식 천문학과 신앙, 그 흥미로운 이야기

단순히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만 일어나는 일 같지만, “성경은 한 점 한 획도 틀림없어.”라고 주장하는 절대다수 목사님 덕분에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분들은 정말 6일 동안 세상이 완성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성경책을 들여다보면 곳곳에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하나 열어볼 시간이 없다면 기존 성경학자들이 밝힌 사실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신약 예수님의 가계도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성경 자체를 절대시하는 잘못된 마음에 기인한다. 성경 내에서의 잘못을 인정한다고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섭리라거나 영광이 가려질 리 없기 때문이다. 천지창조의 신화도 문학적 수사가 곁들여진 표현으로 이해하면 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다.

이 책은 아마추어 천문학자이자 수도자인 독일인 게르하르트 씨가 쓴 글이다. 대학에서의 전공도 전기공학이다. 철두철미한 공대생 마인드라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에 상당히 방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게 보통 생각이다. 작가의 생각은 상당히 합리적이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쌓으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천문연구도 함께 수행해 나간다.

책의 내용은 천문에 대한 흥미를 가끔 전하고 있어 우주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 읽기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수준이다. 또 가톨릭 신자든 개신교 성도든 신앙을 더 두텁게 키울 기회도 제공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과 자연과학은 양립할 수 있고 반드시 공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글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는데 우주의 크기는 대략 500억 광년 정도라고 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단지 500억 년도 아니고 빛의 속도로 500억 년이라니 그 크기는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숫자가 주는 유한성 느낌이 우주도 끝이 있구나 생각하게 할 뿐이다. 물론 그 유한함도 무한함과 차이는 없지만. 저자와 공감한 부분은 여기에 덧붙여진 내용이지만 우주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한한 별 속에서 지극히 평범한 태양이라는 항성을 중심으로 도는 태양계의 신비는 심오함을 넘어선 경외감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우주에는 태양 같은 별이 많이 있다. 그런데 지구처럼 절묘하게 타원을 그리며 공전하는 별은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 공전궤도에 따라 많은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은 지금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그리고 지구 옆에 붙어 있는 위성인 달의 존재도 상당히 신기하고 신기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저자는 말한다.더욱 특이한 점은 밤하늘 파트너 달이다. 달은 매우 특별한 방법으로 지구 궤도를 안정화시킨다. 달이 없다면 지구는 태양 주위를 비틀거리며 돌 것이다. 달은 지구의 궤도를 안정시켜 준다. 본문 101쪽 중

철학이나 신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과학이 추구하는 방향은 다르다. 철학은 모든 사상의 가이드라인이자 선구자적 역할을 해왔다. 문학에 영감을 주기도 했고 실행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과학적 연구 근거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상호 보완적인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대적할 곳은 없어 보인다. 신학은 어떤가. 모든 것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의 형이상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초월학의 최고봉이다. 신의 존재를 탐구하기보다는 신의 존재에 대한 접근법을 기반으로 성경이나 성지에 대한 고고학적 접근을 다루는 학문이다. 물론 철학적 이유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현실은 과학은 신이 없음을 증명하는 도구로 기능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 다수의 무지한 신도들은 성경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임을 역설한다. 잘못이 있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맹목적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담은 글이자 경전이다. 세상을 설명하는 역사책도 아니고 과학책도 아니다. 물론 참고자료로는 쓸 수 있지만. 논리적 인과성에 집중해서 읽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에 집중해서 읽는 것이 신자의 바른 성경 읽는 자세가 아닐까. 그리고 과학도 인간의 탐구와 실험을 기반으로 한 학문임을 생각해야 한다. 과학은 100% 결과를 추구할 뿐 100%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높은 개연성을 가진 가설이 그 가설을 뒤집는 이론이 나올 때까지 유효할 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시한부 진리인 셈이다. 그런데 시한부 가설을 마치 세상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리는 무기로 사용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무모한 일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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